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소장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소장

2018년 12월 17일 뉴욕에서 열린 제73차 유엔총회에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유엔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됐다.

이 선언은 2001년 전 세계 소농들의 국제연합조직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 1993년 창립) 국제농민운동조직으로부터 제안됐다.

비아캄페시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확립되면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UR),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으로 농업이 국제무역 대상이 되고 기업이 농자재 및 농업과 먹거리의 통제가 강화되는 것을 비판했다.

이에 농민의 권리는 물론이고 농업개혁과 농민의 생존권 보장,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대안을 찾고 있었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이 유엔에서 채택된 2018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오영훈 현 제주도지사는 당시 한국정부 대표단(당시 외교부장관 강경화)에게 농민의 권리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국회에서 요구하기도 했었다. 이후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결성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기권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언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019년, 인권활동가이자 농민인 필자는 농민활동가로 적극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고창건 활동가에게 유엔농민권리선언을 알렸다.

고창건 활동가는 농민권리선언에 대한 내용을 제주도민들에게 알리고 제주도 농민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노력하자고 필자와 의기투합했다.

2020년 7월 3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을 설득, 유엔농민권리선언 내용을 알리는 강연회를 개최했다. 강연회는 제주시 지역뿐만 아니라 당시, 제2공항의 토지 수용으로 인해 토지권 침탈 위험이 있던 성산지역에서도 열렸었다.

그해 11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1주년 기념토론회로 “유엔 농민권리선언과 제주의 농민현황”이 열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엔농민권리선언 채택에 깊숙이 참여하고 협력했던 ‘농민권리선언포럼’의 다수 전문가들도 참석했다.

2021년과 2022년 10월 말에 열렸던 제주인권포럼에서도 ‘유엔농민권리선언에 따른 농민의 권리’에 관한 내용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제주도 농민들의 토지권,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보장, 종자권 등 다양한 문제의식들이 도출됐다. 농업이 주요 산업인 제주도 상황에 비춰보면 아주 중요한 농업 관련 의제들이 발굴된 것이다.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이 ‘지속가능한 제주농업을 위한 5대 정책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성인 대표)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이 ‘지속가능한 제주농업을 위한 5대 정책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성인 대표)

이 모든 논의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 활동가가 바로 고창건이다. 고창건 활동가와 생각을 나누었던 시간은 오로지 농민의 권리를 고민하면서 함께 농민의 권리 증진을 위해 행동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농민들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이다.

그런 그가 지금 감옥에 갇혀있다. 그의 변호사, 가족들을 통해서 들은 혐의는 얼토당토않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죄명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한다. 듣기만 해도 공포를 자아내는 ‘간첩’이라는 것이다.

2022년 11월 9일 강은주 전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 자택을 압수수색 할 당시,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무엇인가 혐의가 있으니까 수색영장이 나왔겠죠!?’.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남발하는데도 법원에서 영장이 계속 발급되는 것이 의아했었는데, 2023년 2월 14일자 한겨례신문 기사에 의하면 영장발부율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증거가 소멸하기 전에 실시해야 하는 압수수색영장의 특성이 있다고 하지만, 죄가 있다고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의심하면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도 수사기관과 언론은 압수수색 당하는 사람이 이미 죄가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 중의 하나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교묘한 방식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유엔농민권리선언의 제8조 1항은 ‘농민은 사고, 신념, 양심, 종교, 의견, 의사표현 및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2항 ‘농민들은 공동체로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침해에 대한 평화적인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제9조는 조직 결사의 권리를 가지며, 제10조는 농민에 관련된 정책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제12조는 농민들과 관련된 사회적 분쟁에 있어서 비차별적 사법절차 준수와 국제인권규범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조항에는 단서 조항이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되며, 국가안보와 공공의 안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며, 법적 조치로서만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고창건 활동가의 활동이 무슨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인가? 그걸 밝히고자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과연 비차별적이며 공정한 법적 절차에 의거해서 고창건을 조사하고 있는가?

굳게 닫힌 국정원 제주지부 (사진=박소희 기자)
굳게 닫힌 국정원 제주지부 (사진=박소희 기자)

지금 국정원과 경찰이 자행하는 ‘피의사실 공표’와 ‘강제수사를 위한 강제인치’는 과연 법적 정당성이 있고, 비차별적인가? ‘간첩’이라는 누명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사회적으로 공포감을 자아내며, 그 당사자에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주홍글씨처럼 작동될 수 있다.

‘피의사실공표’라는 공권력의 행위로 ‘무죄추정의 원칙’은 사라지고, 여론재판의 판이 펼쳐진다. 그리고 불법적인 피의자 강제인치 명령과 강제인치 과정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피의자를 더욱 범죄자로 확증하게 만든다. 더불어 수사기관의 심증 확정과 편의를 위해 피의자에 대한 정신적 학대를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보장된 ‘진술거부권’은 사라지고 만다.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1월 12일 제주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공안 조작 놀음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1월 12일 제주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공안 조작 놀음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농민활동가 고창건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에서 국정원은 증거로 몇 년 전에 집회에서 사회를 봤던 영상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대중적인 집회가 북한을 찬양하고 추종하는 집회였던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혐의다. 고창건 농민활동가에 대한 국정원과 경찰의 법집행은 무도했으며, 위법적이었다. 지금이라도 고창건 농민활동가와 이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모든 사회활동가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그리고 설령 조사가 진행되더라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아들의 학폭문제로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취소를 당한 검찰 출신 정순신 변호사는 ‘수사의 최종목표는 유죄판결’이라며 자신은 그러한 국가 수사의 목표에 적합한 인물임을 주장했다.

이에 랑희 경찰개혁네트워크 활동가는 ‘유죄판결이 경찰 수사의 최종 목표라는 인식은 처벌 중심주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경찰에서조차 ’수사는 실체적 진실 규명이 진정한 목표‘라고 반박했다.

점점 검찰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는 퇴행에 부화뇌동하는 현 사안의 조사 경찰과 국정원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규범과 유엔농민권리선언조차 무시하는 행태는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법의 본질은 죄인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

고창건 활동가와 관련한 다른 혐의자들에 대한 불법적인 감금과 조사를 즉각 중단하라.

고창건 활동가와 관련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